리맥림 李麥林 Lee Mack-Lim

[b. 1927]

유화가. 조선화가.
공훈예술가.
호는 설봉(雪峰).
미술가동맹 자강도위원회 위원장.
송화미술원 회원작가.

함경북도 청진시 태생의 리맥림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청진미술연구소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그 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56년까지 군복무를 하였다. 대학 시절, 문학수, 김석룡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처녀작은 1953년 조선인민군 제3차 미술전람회에 내놓은 유화 《관통의 기쁨》(80호)으로 진지방어공사를 하던 인민군들이 갱도가 관통되자 기쁨과 흥분에 넘쳐있는 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이 작품 창작을 계기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건설과 그곳에 전시할 미술창작사업에 참여하였다. 1954년부터 조선인민군미술제작소에서 류환기, 최창식 등과 함께 군사 주제의 작품을 창작하면서 한편으로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이 기간 창작한 작품은 유화 《평양풍경》(1955년, 20호), 《농촌의 가을》(1955년, 15호), 《미래의 건설자들》(1957년, 80호), 《새 거리에서》(1958년, 20호), 《1211고지전투》(1958년, 500호), 《길》(1959년, 20호) 등이다. 그 중 《미래의 건설자들》, 《새 거리에서》는 우수작으로 평가받으며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196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지도원, 조선미술가동맹 자강도위원회 위원장(1963~1982), 자강도 미술창작사 창작실장(1983~1989)으로 행정사업과 창작지도사업 그리고 창작활동을 하였다.
리맥림의 창작 활동은 두 단계로 나눠질 수 있다. 
첫 단계는 1953년부터 1972년까지 20년간의 유화창작단계로 이 기간 그는 유화 《승리》(1960년, 500호), 《나의 수도》(1961년, 100호), 《대오를 기다리며》(1962년, 60호), 《백두고원》(1966년, 120호), 《전시에 농민들의 탈곡 작업을 친히 도와주시는 어버이 수령님》(1968년, 170x162cm), 《사양공의 저녁길》(1970년, 113x163cm), 《강동군 봉도리 마탄 공사장을 현지지도 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2년, 120호), 《정물》(1972년, 60호), 《정물》(1972년, 50호) 등을 창작하였다. 그중 《승리》, 《대오를 기다리며》, 《사양공의 저녁길》, 《전시에 농민들의 탈곡작업을 친히 도와주시는 어버이 수령님》, 《강동군 봉도리 마탄 공사장을 현지지도 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등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특히, 《전시에 농민들의 탈곡작업을 친히 도와주시는 어버이 수령님》은 그의 대표작으로 수수마당질 작업장에서 김일성 주석과 그를 둘러선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작업 모습을 담고 있다. 리재현에 따르면, 수령과 인민의 사상의지적 행동통일을 평이한 구도와 심리적 정서를 뒷받침하는 따뜻한 계열의 색조를 통해 조형예술적으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유화 《사양공의 저녁길》도 그의 대표작이다. 해가 지고 있는 저녁 방목지에서 양떼를 몰고 돌아오는 사양공(북한어 - 가축의 사육을 맡아 하는 사람)의 형상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 농촌을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북한 농촌 저녁에 대한 체험적인 색채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여 민족적 정서와 풍부한 조형미를 실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그는 조선혁명박물관, 사적관들을 위한 반경화(북한어 - 반달형으로 된 방 안 벽면에 배경 그림을 그리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형, 사람, 시설물, 도구, 무기 따위의 모형물을 만들어 놓아 그림 벽면과 좀 떨어진 곳에 높이 설치한 관람대에서 굽어보게 만든 미술 형식) 《고난의 행군》(1972년, 20x48cm), 《배움의 천리 길을 걸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2년, 26x6cm)의 창작성원으로 참여했으며 선전화 《창조적 노동은 자연을 개조한다》(1962년), 《세금감화에 증산과 절약으로 보답하자》(1962년) 등도 발표하였다.
리맥림의 창작에서 둘째 단계는 1973년 이후 시기이다. 이 기간 그는 조선화 《전국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4년, 200호), 《서울 남산 고사포병들의 투쟁》(1974년, 100호), 《도천리에서 조국광복회 부녀회를 조직하시는 김정숙 동지》(1974년, 100호), 《외금강 비봉폭포》(합작, 1976년, 16x8m), 《목장의 아침》(1977년, 100호), 《물》(1978년, 120호), 《부상화》(1979년, 30호), 《원추리》(1980년, 30호), 《호박》(1983년, 30호), 《목란》(1983년, 30호), 《등꽃과 삼광조》(1984년, 30호), 《류선화》(1985년), 《비파》(1987년), 《국화》(1989년), 《장미》(1990년), 《등꽃》(1992년), 《물촉새》(1997년), 《흰 까치》(1998년) 등을 창작하였다. 그 외에도 그는 지하철도사적관, 왕재산혁명박물관, 장자산혁명박물관, 만수대예술극장에 전시할 주요 주제 작품들의 합작성원으로 참여하였다. 이 작품들 중 《부상화》, 《등꽃과 삼광조》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리맥림은 조선화를 발전시키려는 방침적 문제를 조선화 화가들에 국한된 문제로 보지 않고 자진하여 조선화 창작으로 넘어갔다. 20여년 굳어졌던 유화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생소한 조선화로 넘어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도위원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고자 감행하였다. 6개월여에 걸친 조선화 강습과 연이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시할 주요주제 작품의 창작을 통해 확신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주요한 작품창작과제를 맡아 조선화를 훌륭히 형상하였을 뿐 아니라 몰골기법에 의거한 다수의 화조화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미술창작사업에서 이룩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으며, 송화미술원의 회원으로서 송화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점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리맥림’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47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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