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복 李鉉福 Lee Hyun Bok

[b. 1935]

조선화가.
공훈예술가.
문예출판사 공로미술가.

황해남도 벽성군 태생의 리현복은 1950년 해주예술전문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였다. 그 후 평양미술대학에 해주예술전문학교 미술 부분 학제가 편입되면서 평양미술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정종여의 지도를 받으며 조선화를 배웠다. 
첫 작품으로 조선화 《전선의 아버지에게》(1953년, 20호), 《석담구곡》(1953년, 40호)을 도미술전람회에서 선보였다. 그는 늘 보아오던 고향의 경치를 즐겨 그렸는데, 1955년 《황해 금강 장수산》을, 1956년 《석담명승을 찾아서》를 창작하여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발표하였다. 그 중 조선화 《석담명승을 찾아서》는 몰골기법으로 그렸는데 성과작으로 인정되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석담은 그의 고향에서 10리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금강산이나 묘향산과는 다른 향토적 정서가 짙게 풍기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는 석담구곡이 간직한 고유한 아름다움을 대담한 필법으로 그려냈는데 선지에 핀 먹색의 효과와 활달한 필치로 조형미를 성취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21세에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맹원이 되었으며 전문적인 화가로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시기 창작한 작품으로는 조선화 《민족 악기》(1958년), 《초여름의 바다》(1958년, 100호), 《건설장》(1958년, 80호), 《무진대 청년 탄광의 저녁》(1958년, 40호), 《쇠를 다루는 사람들》(1961년, 200호), 《낙원 기계 공장에서》(1960년) 등이 대표작이다. 그 중 《민족 악기》, 《초여름의 바다》, 《건설장》(1958년, 80호), 《낙원 기계 공장에서》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이다. 이 중 《쇠를 다루는 사람들》은 민족미술형식으로 인민의 창조적 노력 투쟁을 전면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평가되며 이 시기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에 그는 조선화 《탐사대부부》(1965년, 80호), 《경축의 밤》(정종여와 합작, 200호), 《포수할아버지》(1966년, 100호) 그리고 《구시물통으로 가는 길》 등 소품도 창작하였다. 그 중 《포수할아버지》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 시기 그림들은 그 전 시기 그림에 비하여 많은 차이점을 가진다. 인물 형상에서의 현저한 발전은 물론, 색을 쓰는 것과 기법적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보인다. 리재현에 따르면, 이는 사의보다 형사를 중시한 것과 관련이 있으며, 몰골기법으로 대상을 함축하여 대담하게 처리하던 붓질의 특징은 그의 그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 시기 잡지 《천리마》의 표지에는 20대의 미술가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의 우수한 몰골그림들이 다수 게재되었다. 리현복은 출판 사업에 복무한 미술가로서 북한 현대 화첩 편집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출판 미술과 함께 화첩 《만민의 흠모》, 《빛나는 영상》, 《영생의 모습》, 《주체 건축의 새 시대》 등 많은 도서들을 담당 편집하여 20여 차례에 걸쳐 편집상을 받았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리현복’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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