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영 鲜于英 Sun Woo Young

[b. 1946]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호는 산률(山律).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작가.
2009년 작고.

평양시 태생의 선우영은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원래 회화를 전공하려 하였으나 경공업대학에서 미술대학에 편입되어 산업미술을 수업 받게 되었다.

졸업 후 처음에는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리다가 1972년 이후 조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미술가동맹에서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우리 미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당의 방침의 관철을 위해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조선화 강습을 조직하였다.이 때 강의는 정종여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교편을 잡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오랜 창작생활을 한 조선화단의 우수한 화가였던 만큼 강습은 높은 질적 수준으로 운영되었다. 조형예술에 대한 기초 실력이 있던 선우영은 강습에서는 주로 조선화 기법을 배우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73년 이후 그는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 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창작한 주요작품으로는 조선화 《박경식 영웅》(1973년, 150x100cm), 《호도해안포영웅들》(1973년, 150x200cm), 《삐라공작임무를 수행하시는 김정숙 동지》 (1974년, 120x80cm), 《조국해방전쟁시기 중앙당학교 강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초안 본인, 본작은 합작, 1976년, 120x80cm), 《배움의 천리 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초안 본인, 본작은 합작, 1976년, 600x300cm),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들어가시는 김정숙 동지》(1977년, 103x80cm), 《매》(1978년, 80x50cm), 《탄광의 종합적 기계화의 새 전망을 펼쳐 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초안 본인, 본작은 합작, 1978년, 400x200cm), 《소년선전대원들 속에 계시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 투사 김철주 동지》(초안 본인, 본작은 합작, 1980년, 280x150cm), 《장군님의 해발을 안고 신갈파 언덕에 서계시는 김정숙 동지》(1982년, 250x130cm), 《감 풍년》(1983년, 140x80cm),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 동지》(1984년, 100x120cm), 수예원화 《만풍년》 (1984년, 300x180cm), 《고구려 처녀》 (1985년, 120x80cm), 《장군님의 뜻을 안고》(1987년, 140x80cm), 《북변의 밤길을 걸으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 선생》(1988년, 120x80cm), 《친위대원》(1989년, 120x150cm), 《금강산 석가봉》(1990년, 250x170cm), 《범》(1991년, 160x110cm),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강반석 어머니》(1992년, 120x80cm), 《만물상의 가을》(1993년, 180x100cm), 《금강산 화주봉》(1994년, 180x100cm), 《금강산 첨성대》(1995년, 200x120cm), 《피눈물의 해 1994년》 중 《천안문의 조기》(1996년), 《금강산 구룡폭포》(1997년, 90x70cm), 《금강산 비퐁포》(1997년, 100x70cm), 《금강산 세존봉마루》(1997년, 90x60cm) 등이다. 

이밖에도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와 부분전람회, 만수대창작사에서 진행하는 정기적인 전람회에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중국, 일본을 비롯한 해외 미술전람회에 출품되어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미술창작에서 이룩한 공로로 선우영은 1989년에 공훈예술가, 1992년에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선우영의 조선화 창작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세화기법으로 창조한 주제화, 풍경화, 동물화 작품들이다. 

세화기법으로 형상한 주제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장군님의 뜻을 안고》, 《북변의 밤길을 걸으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 선생》, 《친위대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강반석 어머니》이다. 이 작품들은 주제적 성격을 띠고 있는 초상화 형식의 작품으로 형상의 치밀성으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을 받은 《장군님의 뜻을 안고》는 북한에서 공산주의 혁명투사로 추앙받는 김철주의 생애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김철주의 혁명 활동을 독특한 회화적 형상 수법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의도적으로 강조한 노을 진 붉은 하늘과 넓은 대지를 배경으로 코트 자락을 날리며 신심에 넘쳐 걸어가는 김철주의 모습을 기념비 조각처럼 표현하였다.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화면의 전체적인 주제 내용에 맞게 세부적으로 대상의 특징을 강조하여 매우 정교한 느낌을 준다.

《북변의 밤길을 걸으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 선생》, 《친위대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강반석 어머니》 등도 유사한 구성 방법과 필치로 형상을 창조한 초상 형식 작품으로 선우영의 독특한 창작적 개성을 보여준다.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이름은 조선화 《범》, 《금강산 석가봉》을 비롯한 동물화, 풍경화 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범》과 《금강산 석가봉》, 이 두 작품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 가운데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범》은 눈과 수염, 털의 형상이 매우 정확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특징과 세부들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금강산 석가봉》 역시 미세한 붓질로써 화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원근관계에 맞는 구체성을 띠고 완성되었다. 그의 모든 풍경화들은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까지 묘사가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큰 것을 위한 부분적인 것의 생략이라는 일반적 논리는 그의 풍경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에서 세화 형상은 조선화 형식의 화법적 특성과 우월성을 보여주는 징표의 하나로 여겨져 조선화 화가들은 세화를 들고 나오면서 서로 누가 더 미세한 그림을 그려내는가를 경쟁하였고, 조선화 부분에서 다른 미술 형식이 미치지 못하는 섬세한 형상이 다수 창조되어 왔다. 그러나 선우영의 작품에서 보게 되는 수준의 밀도를 가진 세화를 창조한 사례는 거의 없기에 세화가로서의 선우영이 조선화 형식 발전에 기여한 남다른 공로가 인정받고 있다. 

선우영의 세화기법은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현미경적으로 사물을 그리는 현실주의, 자연주의, 초현실주의와는 엄격하게 구별된다. 그의 세화 그림들은 대상의 본질적인 측면을 깊이 파고들어 성격화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게 된다.그의 세화들은 정서적 감정을 가지고 정화되어 아름다운 것은 더욱 강조되고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것들은 생략된다. 따라서 필수불가결의 부분과 요소들은 더욱 선명한 자태를 드러내며 아름다운 모습과 특징을 부각한다. 

그의 이러한 개성은 독특한 경로를 걸어온 미술가로서의 그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되고 공고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원래 경공업대학에서 공예를 배웠는데, 보석공예형상은 확대경을 놓고 진행해야 하는 매우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였다. 이 시기에 붙여진 습벽이 유화, 조선화를 창작하는 전 기간 동안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으나 완전한 형태의 개성으로 굳어지기까지는 15년 정도의 노력이 요구되었다. 조형적 안목과 정서적 감정으로 정화되지 못한 세화들에서의 문제점 - 형상의 지루함 - 을 탈피하기 위한 탐구과정을 거쳐 인물 주제, 풍경 및 동물 그림에서 새롭고 개성화된 세화 형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북한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상의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선우영’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746-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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