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준 Lim Sa Joon

[b. 1927]

도예가.
인민예술가.
‘김일성상’ 수상.
평양도자기공장 연구원.
평양미술대학 공예도안학과 교원.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집행위원.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공예심의원. 
2007년 작고.
남포시 출생의 임사준은 소학교 졸업 후 1941년부터 남포 도자기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기술을 배웠다. 해방 후 남포에서 일본인들이 떠난 공장을 복구하여 도자기 생산을 하였다. 김성택, 임사준, 우치선, 홍기영 등이 해방 후 공장에서 고려청자기를 생산한 대표적 도예가들이다. 
그는 당시 도자기 《모란상감꽃병》(1948년, 30x25cm), 《석류음각봉황무늬부각호로주전자》(1948년, 27x15cm), 《연꽃무늬주전자》(1949년, 15x17cm), 《갈매기떼꽃병》(25x25cm), 《모란밀화상감호로주전자》(1949년, 25x15cm), 《모란부각꽃병》(1949년, 30x15cm), 《연꽃무늬투각필통》(1950년, 17x13cm), 《연꽃무늬파실기》(1950년, 15x25cm) 등을 만들었다. 《모란상감꽃병》은 청자기로서 전통적인 고려자기의 색과 무늬장식 방법을 계승한 것으로써 해방 후 도자기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사준은 6.25전쟁 시기,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포부대에서 1955년까지 복무하였고 제대 후, 1957년까지 평양도자기공장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 시기 도자기 《모란상감무늬꽃병》(1955년, 32x25cm), 《모란부각무늬꽃병》(1955년, 30x15cm), 《밀점무늬상감꽃병》(1956년, 30x15cm), 《매화연꽃상감꽃병》(1956년, 27x10cm) 등을 창작하였다. 
1956년 평양미술대학에 공예도안학과가 개설되면서, 임사준은 1957년 대학의 공예도안과 교원으로 임명되었고, 1961년까지 후대 육성사업을 하였다. 이 시기 그의 창작은 휴식기에 들어갔다. 다만 1961년 도자기 《진사흑화꽃병》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교단에서 교수로서의 직무를 다하면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작한 것이다. 《진사흑화꽃병》은 청자소지로 된 기면을 백토로 분장하고 거기에 단순화한 무늬를 진사 안료로 그려 장식함으로써 기물의 공예적 가치를 한층 높이고 기술적 문제들도 해결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1982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현역창작가로, 그 이후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 창작가로 활동하였다. 도자기 《차세트》(1963년), 《흑색유자세트》(1965년), 《수세미무늬꽃병》(1965년), 《백자꽃병》(1965년), 《결정유호박무늬꽃병》(1966년), 《불꽃무늬꽃병》(1968년), 《상감장식꽃병》(1967년), 《흐름유장식꽃병》(1984년), 《갈대와 오리상감장식청자꽃병》(1984년, 미술전람회 입상), 《봉황새상감장식꽃병》(1985년), 《소나무와 사슴상감장식꽃병》(1985년), 《잉어부각장식꽃병》(1986년, 국가미술전람회 2등상), 《진사보시기》(미술전람회 입상), 《국화무늬꽃병》(1987년), 《함박꽃무늬꽃병》(1987년,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소나무와 학상감장식꽃병》(1990년), 《소나무와 학상감장식꽃병》(1992년), 《소나무와 학상감청자반상기》(1997년), 《황목련부각장식꽃병》(1997년) 등을 비롯한 다수의 도자기를 창작하였다. 
임사준은 환갑을 가까이 한 나이에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 생활을 시작하였고, 지난 기간 같이 창작하여 온 우치선과 함께 북한의 청자기를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창작에 전념하였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을 시작한 지 불과 1~2년 사이 질은 물론 예술적 형상에서 자신의 지난 시기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고려청자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는 왕성한 창작적 열정으로 크기와 장식 형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려청자 대작들을 창조하였다. 
1983년 11월 일본에서 진행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고려청자기 2인 전시회》, 1985년과 1989년 일본에서 진행된 《현대고려청자명작전》에도 임사준이 창작한 우수한 작품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그는 민족 공예의 우수한 전통을 시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켜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여 고려청자의 새로운 발전면모를 뚜렷이 보여준 도예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창작한 《국화무늬꽃병》은 단지에 가까운 독특한 모양의 형태와 진사칠물로 국화무늬사이에 산사점무늬를 놓은 것으로 하여 인상 깊은 형상을 창조한 작품이다. 
백토상감으로 굵게 처리된 국화무늬는 기물의 풍만한 형태와 조화를 이루고 가을의 정서를 담뿍 내뿜고 있다. 이러한 국화무늬형상은 진홍빛 산사점무늬에 의해 더욱 돋보인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잉어부각장식꽃병》은 밑이 넓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좁혀진 꽃병의 일반적 형태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꽃병의 겉면은 손으로 빚어 올린 손자국 흔적이 뚜렷하여, 노숙한 공예가의 솜씨를 느끼게 한다. 작품에 창작가의 형상적 의도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부분은 장식이다. 부각으로 처리된 잉어들의 형상은 장식의 정수를 이루고 있다. 물속에서 세찬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수면 밖으로 솟구쳐 자태를 드러낸 잉어의 다양한 모습은 낮은 부각과 선각이 배합되어 입체적으로 보인다. 특히 공예가로 잉어의 비늘과 지느러미, 꼬리, 물결을 대담하게 양식화하여 간결하게 처리함으로써 작품의 조형적 품위를 한층 더 했다. 이 작품은 이 시기 창작된 도자기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임사준은 현대 북한 도자기를 대표하는 공예가로서 우치선과 함께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임사준은 우치선과 창작에서 적지 않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전통에 치우치며 장식 형상도 전통적인 고려청자기의 수법에서 크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 우치선에 비해 임사준은 보다 사색적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혁신적 시도를 많이 한다. 
임사준은 북한 도예가들 가운데 도자기에 관한 풍부한 이론적 지식을 가진 자로서, 그리고 철저한 혁신가로 평가 받는다. 임사준은 ‘도자기는 매개 시대의 역사적 산물인 것만큼 당대 인간들의 사상정신적 요구가 뚜렷하게 반영되기에, 과거의 것을 맹목적으로 계승한다면 도자기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현대 인간들의 감정과 정서를 반영한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도자기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공예가들이 시대의 본질을 꿰뚫고, 주도적인 사상 감정과 정서를 파악하여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예술에 그것을 구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형태와 색, 장식의 3대 요소에서 현대적 느낌이 표현되어야 하고, 이것을 실현한 도자기 공예가는 참다운 예술가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사준의 도자기 형태는 다양할 뿐 아니라 시원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형태 구성에서 부분들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전반적 형태의 균형과 조화를 맞추면서 큼직큼직하게 시원한 조형을 추구해왔다. 또한 장식에서도 묘사대상의 본질적 특징을 집약되고 함축된 표현으로 뚜렷하게 강조하며 형태와 장식에서 원숙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임사준은 북한 도자기 창조에서 이룩한 공로로 1984년 공훈예술가, 1985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으며 19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 그는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집행위원이며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공예심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임사준’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47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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