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원 Chun Chang Won

[b. 1935]

인민예술가.
조선화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장.
강원도예술학원 미술강좌장.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집행위원.
1995년 작고.

함경북도 화성군 태생의 천창원은 김책 제4인민학교, 김책 제1중학교를 1950년에 졸업하고 옹기, 청진에서 철도역 전철원, 검표원으로 일하였다. 1955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에 입학하여 리선호, 림자연, 정종여 등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60년 졸업하여 모교에서 조선화강좌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대학의 박사원을 통신으로 다녔다. 1967년부터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장으로 10년간 활동했고 그 후 화성군 편의관리소 미술원, 강원도예술학원 미술강좌장, 이후에는 일련의 창작기관들에서 창작가로 주로 교육사업과 창작활동을 벌였다.  
그가 창작한 작품들로는 《봄》(1960년), 《삼지연》(1960년), 조선화 《수령님께 드리자》(1961년), 《묘향산》(1961년), 《구시물통》(1965년), 《등꽃》(1965년), 《4월》, 《초여름》(1985년), 《장미》, 《삼일포의 아침》, 《로야령을 넘으시는 위대한 수령님》(1969년), 《위대한 영장 김정일 동지》(합작, 1987년), 《도하작전을 지휘하시는 최고사령관 동지》, 《나는 동무들과 함께 있는 때가 제일 좋소》와 보석화 《2월의 소백수》(1995년) 등이 있고, 대형벽화 《삼일포의 아침》, 《삼일포의 메아리》, 《솔섬의 아침》, 《만경대의 4월》은 합작으로 창작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많은 소논문들을 집필, 발표하였다. 
그는 창작사업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데 이어 1995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천창원은 1970년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위원,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천창원의 창작생활에서 근 25년간은 크게 눈에 띄는 수작을 내놓지 못했는데, 이는 이 시기 조선화 《초여름》 외에는 조선미술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지 못했음이 말해준다. 이 기간 그는 주로 교육행정사업에 몰두하였다. 정종여로부터 조선화강좌장 자리를 인계받을 때 그는 33살의 젊은 교육자였다. 교육 연한도 짧고 기술실무적으로도 준비되어 있지 못했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내기 위해 전람회 작품 창작 등은 뒤로 미루고, 모든 힘과 정력을 조선화 화가들을 키워내는데 바쳤다. 
천창원은 조선화의 몰골법을 발전시키는 것에 대한 당의 독창적인 문예방침을 받고, 몰골기법을 구현하여 형상력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본래 그는 성격상 침착하고 내성적인 것이 특징이어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화 《수령님께 드리자》에서도 세화기법을 적용하였다. 김정일 주석의 생일을 맞아 학생들과 교원들이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진체세화수법으로 비교적 치밀하게 묘사하였다. 이 작품은 당시의 가장 화려한 진채세화 그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문예방침적으로 새롭게 제기된 몰골법에 의한 현대적 미감에 맞는 그림의 창작을 위해 성격적 측면과 습관화되고, 습득된 세화기법에서 벗어나 사의적 방법에 의한 박력 있는 단필법을 체득하여야 했다. 몰골법은 형상에 의한 사물의 외형적인 구체성보다 사의에 의한 사물의 미적 성격과 기질, 특징을 예리하게 밝혀내는 보다 높은 단계의 사색과 숙련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화가 장승업을 비롯한 과거의 이름 있는 화가들의 몰골 작품을 연구하고 동양화 형식의 몰골 그림들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진행하여 거기에서 계승하고 따라 배워야 할 측면을 찾아내고 구현된 기법들을 체계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리석호, 정종여 등 몰골화의 대가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는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몰골은 사의적 방법에 기초한 것으로써 화가의 주관에 의거하는 사의는 객관적 현실을 부정한 관념론적인 사상이며 따라서 사의는 사실주의와 배치되며 창작에서도 추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어마어마한 주장으로 한때 사의에 의거한 몰골그림은 심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창원은 당 문예방침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골기법을 꾸준히 연마하여 결국 《등꽃》, 《장미》, 《초여름》 등 형상력 있는 그림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의 몰골화 창작은 생의 마지막 10년을 빛나게 한, 훌륭한 결실을 가져왔다. 몰골 그림 기법으로 창작한 조선화 《위대한 영장 김정일 동지》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외 《2월의 소백수》, 《삼일포의 아침》, 《삼일포의 메아리》, 《솔섬의 아침》을 비롯한 다른 미술 형식에 구현된 몰골형상도 사상예술성이 높고 기술적으로는 완벽한 시대의 걸작으로 창조되었다. 그는 10여 년 간 근 1,000여점에 달하는 많은 몰골화를 창작, 국내외에 보급하였다. 그는 부단한 숙련에 의한 능숙한 붓 다루기로 대상의 본질적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표현하고 간결한 구도와 선명한 색채, 간결한 필치로 예술적 형상의 품위와 문화성을 높은 수준에서 확보하였다. 몰골화에서의 그의 필력은 리석호, 정종여 이후 정창모, 리창과 함께 북한 화단에서 손꼽힌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천창원’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59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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