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룡 崔成龍 Choi Sung Ryong

[b. 1942]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조선미술가동맹 미술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강좌장.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집행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책임위원.

평안북도 용천군 태생의 최성룡은 195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에 입학하여 정종여, 김용준, 리률선에게 조선화를 배웠다. 학급에는 최계근, 김병희, 강신범 등이 있었는데 열의가 대단히 높았다.
졸업 작품으로 조선화 《최고사령관 동지께 드리는 맹세문》을 형상하였다. 1966년 대학을 마치고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되어 유명한 조선화 화가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적 화법들을 습득하였다. 이 시기 창작한 그림들로 조선화 《천리 길을 걸으시어 만경대 고향집에 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정현웅, 강정님과 합작, 1968년, 160x232cm), 《감삼봉 전투》(정현웅과 합작, 1968년, 375x175cm), 《만경대의 갈림길에서》(정영만, 김인환과 합작, 1970년, 500호), 《평양시 공청위원회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김인환과 합작, 1970년, 144x189cm), 《동해연합부대 지휘성원들 속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4년), 《포사격은 나에게로》(1974년), 《대성지점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5년), 《봉화혁명사적지 풍경》, 《화학화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박진영, 박룡부, 김정남과 합작, 1975년), 《간석지의 저녁 풍경》, 《노을 비낀 백두산》, 《달밤의 기러기》, 《얼음 풀리는 대동강의 아침》, 《만경대 풍경》, 《경축의 밤》(1975년), 《대동강반의 2월》(1978년, 125x65cm,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등 주제화, 풍경화들을 창작하였다. 
조선화 《만경대의 갈림길에서》는 그가 초안을 창작했고 기본을 형상한 작품으로서 독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김일성이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고 강선으로 향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존재로 김일성을 우상화는 내용으로 리재현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닌 김일성의 풍모를 진실하게 묘사하고, 자연환경을 조형미가 느껴지도록 잘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1975년부터 조선미술전문일군대표단으로 3년간 아프리카에 파견되어 미술교육사업과 창작사업을 전개했다. 그 후 1978년부터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교원이 되어, 1988년부터 강좌장으로 1992년까지 후대 교육 사업을 하였다.
이 기간 조선화 《기러기》, 《풍어》, 《무용수》,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찾아주신 숨은 영웅들》(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보금자리》, 《회령 백살구》, 《백두산의 곰》, 《연꽃과 물촉새》(국가미술전람회 2등상), 《독수리》, 《순천의 첫 불길》, 《육탄》, 《향도의 햇빛아래 꽃피는 평양》과 《폐허 위에 일어서는 평양》(14명 합작, 1992년, 각각 89x800cm,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등 다수의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조선화 《향도의 햇빛아래 꽃피는 평양》과 《폐허 위에 일어서는 평양》은 10여명의 대학 교원들이 합심하여 그렸는데 초안으로부터 본작의 구성과 형상에서 최성룡이 주도하여 창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시대의 새로운 《평양도》를 그릴 것에 대한 평론가의 권고에 의해 창작된 것인데 지난 시기의 《평양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형상의 폭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전쟁 시기 파괴된 평양과 웅장하고 화려하게 일어선 현재의 평양을 대비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폐허 위에 일어서는 평양》은 전후 첫 시기 평양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그림은 구성이 웅대하여 평양의 전모를 펼쳐놓은 완전한 전경화로 창조되었고 밀집된 거리의 고층건물들과 움직이는 자동차, 사람들을 매우 섬세한 필치로 정교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는 18세기 《평양도》, 19세기의 《평양도》, 1914년에 그린 《평양도》와 함께 평양이 걸어온 역사를 전하는 작품이다.
최성룡은 화법강좌에서 전통적인 조선화 화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지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조선화 기법은 어릴 때부터 체계성 있게 꾸준히 학습할 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창작에서 자유로이 구현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재능 있는 후예를 찾아내고 키우는 사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그가 유치원시절부터 키운 꼬마화가로는 오은별, 황금철, 한성일, 김일송, 김철학, 손영진, 김모란 등이 있다.    
최성룡은 대학기간 참고서 《몰골법 기초》, 교과서 《조선화 화법》을 집필하였다. 
그는 1992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조선화 《새 탄맥을 찾은 굴진공의 기쁨》(1994년), 《4월의 봄》, 《금강산 비로봉》, 《참새》 등 적지 않은 화조몰골 그림들을 창작하였다.
1992년에 공훈예술가, 1997년에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책임심의원을 역임하였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최성룡’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70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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