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가.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평양미술대학 교수.
평안북도 구성시 태생의 강훈영은 학교 때 예능과목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음악과 미술에 각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학생 때에는 미술보다 음악에 더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 지망을 앞 둔 진로 결정에서 미술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54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였다. 문학수, 김석룡 등 관록 있는 선생들의 지도 아래 6년간의 미술전문교육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1960년 대학 졸업 후 1986년까지 유화 강좌, 소묘 강좌, 조선화 강좌에서 교원으로 있으면서 다수의 유화, 조선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유화 《백두산의 3월》(1961년), 《영웅 직포공》(1961년), 《대동문》(1961년), 《재봉대원》(1964년, 162x80cm), 《복수의 길》(1965년), 《선전원》(1966년), 《농촌혁명화를 위하여 농민들 속에 들어가시어 정치 사업을 벌이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1967년, 130x158cm), 《류벌공들 속에서 정치 사업을 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리영찬과 합작, 1968년), 《<민생단> 보따리를 불사르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박창준, 리영기와 합작, 1970년, 227x161cm), 《무산지구 전투 승리를 구상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0년, 135x160cm), 《쟈신즈 목재소 노동자들 앞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박창준과 합작, 1972년, 177x258cm), 조선화 《봉화리 풍경》(1973년), 《다락밭 건설을 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5년, 199x310cm), 유화 《부모 없는 아이들을 한품에 안아주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류정봉과 합작, 1978년), 조선화 《꺼질 줄 모르는 당 중앙의 불빛》(1980년, 124x190cm), 《나어린 수재를 찾아주시고》(김광식과 합작, 1982년, 178x250cm), 유화 《적후전선에서의 최현》(1986년) 등이 이 시기 창작한 대표작들이다. 그 중 《재봉대원》은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에 당선되었으며, 그의 작품들 다수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재봉대원》은 광선 효과에 의한 대상 형상의 직관적 표현에 대한 과거 우수한 창작 성과들을 참조하여 화면 밖에 우등불을 설정하고 그 불빛에 반사되는 인물과 밀림의 나무를 조형미 있게 형상한 작품이다. 난색과 한색의 대조, 그 중간을 어두운 그늘진 명암으로 처리하여 색채구성의 조화와 통일을 이루었다.
이러한 창작성과에 기초하여 유화 《농촌혁명화를 위하여 농민들 속에 들어가시어 정치 사업을 벌이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를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을 위해 그는 백두산 지구에 방문하여 그 곳 인민들 속에서 화폭의 주인공들을 찾아 습작을 하였다. 수수한 농민복 차림으로 농민들 속에 들어간 김일성의 모습을 형상화 한 이 작품은 북한 내에서는 수령 형상을 창조한 미술 작품 중 성격 문제를 해결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강훈영은 이 시기 조선화 작품들도 발표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꺼질 줄 모르는 당 중앙의 불빛》이다. 깊은 밤 수북이 쌓여 있는 문건들을 검토하는 김정일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조선화의 표현방법을 최대한으로 살려 모든 형상을 밝고, 선명하게 나타내었다.
1986년 이후 조선화학부 강좌장으로,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 회화강좌장으로 있으면서 소묘적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화들을 그렸다. 조선화 《예술인》, 《농장원 반신》, 《청년공산주의자 한영애》(1988년, 100x185cm), 《통일의 꽃 임수경》(합작, 1990년, 100x167cm), 유화 《예술인 전신》(1996년) 등은 치밀하게 마무리한 형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유화 《예술인 전신》(124x94cm)은 유화를 우리 식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당의 방침에 기여하고자 그가 3년간의 고심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이 그림을 창작할 때 그는 불치의 병과 싸우고 있었으나, 결국 완성해냈다. 리재현에 따르면, 이 작품은 북한에서 창조된 유화 가운데 가장 섬세한 그림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어떤 묘사의 공백 없이 치밀한 방법으로 모든 요소들의 형태와 부분, 색과 질감까지도 표현하여 화가의 높은 묘사력을 증명해주었다. 조선화와 유화 기법을 전면적으로 파악한 작가로서 그의 작품 다수에서 두 형식의 우수한 측면들을 통합시켜 형상에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랫동안 후세대 육성 사업을 하면서 강의안 《조선화에 대하여》(1989년), 《회화 습작집》(1992년), 《조선화 교재 습작집》(1980년), 교과서 《소묘》, 《소묘실기》 등을 집필하였다. 그는 창작사업과 교육사업의 공로로 1980년에 공훈예술가, 1997년에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강훈영’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599-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