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화가.
공훈예술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실장.
함경북도 신흥 태생의 리화식은 인민학교 때, 함흥 사범대학 미술강좌장 채동필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1958년 수채화 《꽃피는 농장벌》을 세계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1962년부터 미술가 한상익에게서 개별지도를 받았고 그의 도움으로 전국 노동자 미술 강습에도 참가하였다. 강습이 끝난 후 함흥에서 개인 미술 전시회를 가졌다.
1964년 인민군에 입대하였고, 1969년 개최된 조선인민군 제4차 미술전람회에 유화 《초병》(리영수와 합작)과 《사랑의 전설》을 출품했는데, 각각 2등과 3등을 수상했다.
1971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유화를 배우다 전과하여 1976년 조선화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조선화 강좌 교원으로 모교에서 10년간 교편을 잡은 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실장으로 활동했다.
리화식은 대학에서 교원으로 있을 때 주요 대상의 벽화 작품 창작에 참여하였다. 대형 벽화 《옥류동 단풍》이 대표작이다. 이 초안은 만수대창작사 미술가 서대무가 하였고 그것을 2,400배 확대한 원화가 그의 주도 하에 여러 미술가들과 합심하여 완성되었다. 특히 폭포수를 잘 그렸는데 이 부분을 담당하였던 리화식은 뛰어난 창작적 기량을 발휘하였다. 길이 120미터에 달하는 대형화이지만 바위 위로 구슬 같이 흘러내리는 물방울과 물속에 들여다보이는 바위 등이 세부적으로 묘사되었다.
그가 창작한 조선화 작품 중에서도 《삼지연의 봄》(1975년, 300x250cm), 《임무》(1977년, 230x130cm), 《머슴 오누이》(1977년, 170x120cm), 《금강산의 여름》(1977년, 200x140cm), 《묘향산의 봄》(1978년, 170x75cm), 《매화》(1979년, 120x40cm), 《매화 핀 봄날》(1980년, 240x180cm), 《가을의 금강산》(1981년, 240x140cm), 《묘향산 동석동의 봄》(1982년, 214x140cm), 《금강산》(1983년, 170x75cm), 《외금강의 저녁》(1984년, 170x75cm), 《금강산의 가을》(1987년, 170x75cm), 《첫 성과》(1987년, 200x155cm), 《대동강의 저녁》(1988년, 70x50cm), 《백매와 홍매》(1989년, 250x140cm), 《홍매》(1989년, 275x170cm), 《친선야회》(1989년), 《태천발전소 3호 건설자들》(1990년, 210x160cm), 《포항의 영웅들》(1993년, 215x175cm), 《사랑의 온실》(1993년, 130x80cm), 《묘향산 만폭동》(1994년, 170x95cm), 《금강산 집선봉》(1995년, 170x95cm), 《충정》(1996년, 220x175cm) 등이 우수하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중국, 일본, (이전) 소련 등지에서 개최된 미술전시회에 작품들을 출품하였으며, 1994년에는 중국 연길시에서 3개월에 걸친 창작생활을 하였다.
리화식은 인물 주제 보다 화조 몰골 그림에서 더 뛰어난 작가적 기량을 보여 왔다. 그는 유화를 통해 미술에 대한 기초를 쌓았으며, 조선화의 기법들을 잘 연마하고 있었기에 형태미가 진실하고 색채감정이 풍부한 작가로 평가된다. 특히, 매화 그림에 특기가 있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리화식’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718-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