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동우(東愚).
도쿄미술학교 수석 졸업.
고희동에 이은 두 번째 서양화가로서 유화 도입기 선구자.
한국인 최초 유화 개인전 개최.
1916년 ‘해질녘(夕暮)’ (현재 도쿄예술대 소장) 제10회 일본문전 특선.
(대동강에서 목욕하는 두 여인을 그린 누드화. 한국인이 그린 최초의 누드화)
3.1운동 이후 평양에서 삭성회화연구소 설립.
해방 후 1946년 평양시미술동맹 상무위원으로 미술현장 복귀.
195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미술전에 유화 ‘모란봉의 가을’ 출품.
1959년 사망.
평양 출생의 김관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으며, 우리나라의 우수한 미술 유산을 연구하는 한편, 서양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미술가가 될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유학시절 그는 유행하던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각적인 색채 인상의 표현에 집중했다. 그의 1916년 작 《저녁 무렵》(해질녘)이 그 예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인상주의 미술의 외광회화습작형태에 치우쳐 대기 공간에서의 광선변화와 그 조형적 효과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였으며, 초기 작품들은 회색조가 짙은 것이 특징이다.
3.1운동(북한은 ‘3.1봉기’로 기술) 이후 일제가 가혹한 탄압과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추진해나가자, 그는 항거의 표시로 붓대를 꺾고 미술 창작을 단념하였으나 민족 미술 후배 육성은 멈추지 않았으며, 평양에 《삭성회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미술을 지향하는 청소년들을 길러냈다.
광복 이후 김관호는 60이 가까운 나이에도 미술 작품 창작과 사회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46년 3월 14일에 조직된 평양시미술동맹의 상무위원으로, 1946년 3월 25일에 조직된 북조선예술총연맹의 미술동맹 중앙위원,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술가들을 당으로 모으고, 창작사업을 지도하고 신진 미술가들의 수준을 높여주는 일들을 하였다.
전후 시기부터 그의 미술가로서의 창작활동과 성과가 눈에 띠게 증가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으로 유화 《초상》(1954년), 《대타령채전》(1955년 15호), 《모란봉》(1955년, 40호), 《주암산의 늦가을》(1955년), 《대동강 풍경》(1956년), 《만경대 풍경》(1957년, 20호), 《해방탑의 여름》(1958년 73x100cm), 《수원지와 대성산》(1958년 53x80cm) 등이 대표작이며, 이밖에 《모란봉의 가을》(1956년), 《능라도》, 《의암리 풍경》(1956년) 등이 있다.
김관호는 고향인 평양을 무척 사랑하였으며 평양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데 모든 창작적 열정을 쏟아 부었다. 따라서 그의 작품 다수가 평양의 실경과 연결되어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이 간직되어 있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새롭게 변모되는 평양의 모습들을 정서 깊고, 특색 있게 드려냈다.
1957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북한 미술전람회에 그의 유화 《모란봉의 가을》이 전시되었는데, 평양의 가을 풍경에 대한 훌륭한 형상으로 관람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모란봉의 가을》은 모란봉과 대동강에 뿌리를 둔 청류벽의 가을 경치를 섬세한 필치로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가을의 정서를 품은 난색조로 화면을 통일시켰다.
이 작품과 함께 《해방탑의 여름》, 《수원지와 대성산》, 《주암산의 늦가을》 등도 대동강을 담아 형상한 풍경화들이다. 《해방탑의 여름》은 무더운 여름날 신록이 짙은 모란봉을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해방탑이 서있는 모란봉과 움직일 줄 모르는 대동강 기슭에 높이 자란 포플러 나무, 수양버들은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의 정적인 분위기를 조형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그의 다른 풍경화들인 《대타령채전》, 《의암리 풍경》도 그의 특징적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대타령채전》은 미국의 폭격으로 잿더미만 남았던 보통 강반에 사람들의 생활이 다시 펼쳐지는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화면에는 새로 지은 문화주택과 두 그루의 수양버들이 있고, 집 주변에서 남새밭을 가꾸는 몇 명의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은 당시 흔히 볼 수 있던 평범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지만 조국을 지켜내고 삶을 다시 창조해나가는 사람들의 의지와 신념, 조국과 고향을 사랑하고 가꾸는 고상한 사상 감정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림의 색조는 연분홍빛을 띠고 있으며, 대상의 형태보다는 색채 감정을 중시한 것 등에서 그의 초기 작품에서 나타났던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다.
김관호는 고향 평양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의 풍경화들은 고향, 평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평이한 구도, 통일된 색조, 부드러운 붓질, 정리된 화면은 고향에 대한 창작가의 향토적 감정을 화폭에 구현하는 데 주요한 요소였다.
김관호는 북한에서 사실주의 유화 발전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김관호’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224-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