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金成民 Kim Seong Min

[b. 1949]

조선화가.
인민예술가. 
김일성상 계관인.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장.
만수대창작사 사장.

평양시 태생의 김성민은 1964년에 평양룡남중학교, 1968년에 대성고등화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룡남중학교 시기 미술교원이었던 리건일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당시 《푸에블로호사건》으로 긴장상태가 격화되자 인민군대에 1975년까지 복무하였다. 제대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활동하였다. 
김성민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고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미술소조가 생긴 1964년부터 가장 적극적인 미술소조원으로서 기초를 닦았다. 그는 평양미술대학 조각학부를 다니던 형 김성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김성민은 형의 과외 미술공부 때 항상 함께 다니면서 소묘, 속사, 채색을 따라 배웠고, 형은 매우 엄격히 그의 미술공부를 통제하였다. 
만수대창작사에서의 첫 창작 생활은 실력과 경험이 부족했던 그에게 많은 고충을 주었기에, 늦게나마 평양미술대학의 통신교육망을 통해 조선화를 배워 1979년에 졸업하였다. 전문창작집단에서 과제를 맡아 수행하면서 학업을 진행하여, 졸업증이 목표가 아닌 목적지향성 있는 전문기술교육이 되었다. 그의 창작실력은 2~3년 사이에 현저히 높아졌고, 교육과 실천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창작가로서의 이름은 조선화 《지난날의 용해공들》(1980년, 139x226cm)을 통하여 단번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국가미술전람회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1등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조선화 분야에서 이룩한 가장 우수한 성과작의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당대 현실을 예리하게 조형화한 주제내용과 다면적인 인간성격 창조, 극적 구성과 색채 대비, 박력 있는 조선화의 필치를 통해 높은 사상예술적 성과를 거둔 작품으로 평가된다. 붉은색 계열 색조와 한색 계열의 색조로 구분되어 있는 화면에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모순과 대립을 보여주는 인간들의 갈등 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뻘겋게 단 육중한 쇳덩어리를 가운데 놓고 좌우에 열을 지어 어깨에 멘 노동자들이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어깨에 실린 엄청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 중에는 뼈만 앙상한 노인도, 소년 노동자도 있다. 작가는 이 노동계급의 다양한 개성적 형상을 통해 당대 북한 노동계급의 계급적 각성, 뭉쳐가는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천만근의 무게를 혼자 들어 올리는 듯 단련되고, 각성된 중심의 젊은 노동자의 모습은 작품이 제기한 주제사상적 과제를 드러내는 주인공으로 창조되었다. 차고 어두운 색으로 묘사된 공장주와 감독은 시대 밖으로 밀려나가게 될 계급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리재현은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조형미는 인물군상들의 총체적 덩어리에서 오는 양감이라 본다.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말없는 고무 속에서 어려운 일을 처리해 나가는 불에 끄슬리고 땀에 젖어 있는 그들의 외모는 폭발할 듯한 팽팽한 긴장감으로 응결되어, 하나의 힘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에, 새로운 역량의 탄생과 같은 미래지향적 사상감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화 《지난날의 용해공들》은 전면적인 채색화로 전환한 이 시기 조선화 창작에서, 색채 형상의 소극성을 극복하고 현실적 색채 감각으로 접근, 강렬한 색묘와 인물의 성격에 맞는 활달한 붓질을 통해 명백한 혁신적 의도를 나타내었다. 이 작품 이전에는 조선화에서 색도가 이정도 수준으로 높은 작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민은 이 작품 창작 후 주요 주제 형상을 위한 작품 창작에 집중하였다. 조선화 《혁명연극 <3인 1당> 공연의 날에》(1985년, 182x318cm,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원한 깊은 원철로》(1987년, 189x308cm,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평양의 새봄》(1988년, 206x447cm,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수령님의 뜻을 이어 조국을 통일하리》(1994년,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뜻 깊은 설날에》(1995년,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린이들입니다》(1995년,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8월 전원회의》(1995년,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초소의 병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소》(1997년,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등과 《조국해방을 앞둔 2월의 명절》(1992년), 《조선혁명군 결성》(김수동과 합작, 1990년), 《항일의 혈전 만리》(1997년), 《서해갑문의 위대한 승리》(합작, 1989년), 《강선의 노동계급을 천리마대고조에로 불러일으키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합작, 1983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합작, 1994년) 등 다수의 작품들을 형상하는데 기여하였다.  
김성민의 창작 활동에서 중요한 이력 중 하나는 1994년 조선화 《태양상》의 형상이다. 김일성의 영결식에서 사용된 김일성 영정 《태양상》의 작가가 김성민이다. 그는 이 창작적 공로로 김정일의 접견을 받고, 공민의 최고영예인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일반 주제화로서 조선화 《국제평화대행진》(합작, 1989년), 《임수경의 옥중투쟁》(합작, 1989년), 《김정일 시대를 빛내는 청년 영웅들》 중에서 《싸우는 갱도》(1988년), 《피의 교훈》(1984년), 《분단의 장벽을 불사르라》(1989년), 《영원한 청춘》(1985년), 《북춤》, 《장고춤》, 《환희》, 《쟁강춤》 등을, 그리고 《삼일포의 가을》(합작, 1980년), 《칠보산의 가을》(합작, 1996년), 《백두산천지의 번개》(1998년), 《눈이 내린다》, 《고향의 냇가》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1982년에 공훈예술가, 1992년에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이며 미술작품 국가심의위원회 종합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성민은 일본에서 열린 통일미술전람회, 이집트에서 열린 미술축전, 이란국제콩클, 싱가포르, 모스크바 등 여러 나라들에서 열린 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고 조선화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김성민은 국제조형예술협회 민족미술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이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김성민’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769-772) 
다음글 김성근
이전글 김성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