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가.
공훈예술가.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 부교수.
예술학 학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유화분과 위원.
강익하는 평안북도 의주 태생으로 평양미술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전문부 2학년 때는 수채화 《벌목공들》(1956년)을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기념미술전람회에 출품하였다. 대학 시기 농촌의 현실을 많이 연구하여, 농촌 주제를 전문으로 하는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유화 《청산리 사람들》(1961년)을 창작하였고 이어 《리신자의 초상》을 그렸다. 그는 졸업 후 지속적으로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으로 활동하면서 후대 교육 사업에 전념하였을 뿐 아니라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가 창작한 작품들 중 유화 《장길부 여사》(1962년, 97x73cm), 《유격근거지를 위하여》(1963년), 《혁명가의 어머니》(1964년), 《만경봉 풍경》(1964년), 《혁명투사 최일화 어머니》(1965년), 《오월단오》(1965년), 《유격대 입대》(1968년), 《한 노동자의 가정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68년), 《화천공작기계공장 터전을 잡아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69년), 《전후복구건설의 위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70년), 《피를 뿌린 밀사》(최원수와 합작, 1985년, 160x298cm), 《소원》(1988년), 《천해 양식장》(1988년), 《꿈같은 소식》(1989년), 《평양 축전의 밤》(류정봉과 합작, 1989년), 《신흥탄광지하혁명조직을 지도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92년), 《협동화를 앞두고 농민들과 담화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1995년), 《조선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끌어가는 일제 침략군놈들》(1996년) 등이 대표작이다. 그밖에 소형 반경화 《오늘의 청산리》, 《과거의 청산리》(1971년), 대형 반경화 《1211고지 방어 전투》, 전경화 《대전 해방 작전》 창작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원래 농촌 주제를 전문으로 하겠다고 결심하였으나 대학교원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뜻을 실현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갈망으로 전람회마다 소품을 발표했다. 이 중 처음으로 성공적이었던 작품이 유화 《혁명가의 어머니》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에 입상하였다. 이 작품은 1962년 초상형식으로 그렸던 《장길부 여사》의 연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장길부 여사의 강하고 의로운 성격을 드러낸 성과작으로 인정받아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유화 《소원》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에 입상하였다.
강익하는 1974년부터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초상그림을 그렸다. 김혁, 황정해, 김은신, 김택만 등 26명의 투사들을 상상화로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후 《대성산혁명열사릉》 조각창작 사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교육자로서 그는 참고서 《소묘실기》(1985년 초판, 1990년 재판), 《유화채색》(1993년 초판, 1996년 재판)을 집필, 출판하였다.
내용은 리재현 저 『조선력대미술가편람』(1999, 문학예술종합출판사)의 ‘강익하’ 소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pp. 655-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