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묘사력과 농밀한 색감… 북한 미술의 꽃 ‘조선화’

박제일_가을의 삼지연_한지에 채색_70x129cm


김영숙(다물통일문화재단 이사장 · 송화미술관 관장)


한국에서 북한 미술품을 접하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91년 북한 미술이 최초로 한국에서 소개된 이후 북한 미술전은 이제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열리고 있다. 2003년 국내 최초로 개관한 북한 전문 미술관 ‘송화미술관’의 경우 최근 15년간 30여 차례 북한 미술전을 열었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제주 등 개최 장소도 다양하다. 냉전체제가 세월과 함께 녹아내리고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북한 미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북한 미술은 두껍게 칠한 물감 층과 화려한 색상 때문에 우리나라 이발소 그림과 비슷하다는 오해를 받았다. 이는 북한 미술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우리 민족 예술사는 남한, 즉 한쪽만의 특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분단이 초래한 비극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 서로 다른 형식과 기법을 갖게 됐지만, 우리 민족 예술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남북 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 반만 년의 분단 역사 속에서도 치열하게 문화예술 발전을 추구해왔다. 남북의 예술사가 한데 어우러질 때만이 명실상부한 우리 민족 예술사라 할 수 있다. 


선명하고 간결하며 섬세한 화법

올해 9월 기적과도 같은 남북 정상회담과 10월 남한 대표단의 평양 방문 일정에는 만수대창작사 방문이 포함됐다. 남북 간 문화 교류에서 북한 미술을 이해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남한 방문단이 만수대창작사를 찾은 이유는 이곳을 통해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북한의 가치를 엿볼 수 있고, 나아가 이곳이 북한 문화와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만수대창작사의 또 다른 특징은 엄청난 규모와 함께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관리체계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미술을 상징한다. 북한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미술 창작단체인 셈이다.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창설됐다. 평양 도심에 위치한 이곳 부지는 3만 6000평에 이른다. 이곳에는 약3700명의 예술가와 관리자들이 활동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봐도 이런 곳은 없을 것이다. 오직 평양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예술가 집단 공방이다. 이곳에서 예술가들은 조선화, 유화, 조각, 출판화, 벽화, 도자기 도예, 수예, 보석화, 도안 등 10여 개의 창작단에 속해 미술 작업을 한다. 조선화는 북한 미술을 대표하는 회화 형식이다. 오늘날의 조선화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회화 형식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북한 미술은 철저하게 김일성의 주체미술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어 청신한 감흥과 우아한 세련미로 일관된 회화다. 그중에서도 조선화는 선명하면서도 간결하고 섬세한 화법으로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연하고 부드러운 색채감, 함축성이 돋보일 뿐 아니라 부차적인 것은 생략하고 본질적인 것을 강조함으로써 탄력적이고 고상한 필치에 의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그 결과 조선화는 우리 민족 회화의 고유한 미술 형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최성룡_눈꽃 핀 2월의 봄_한지에 수묵담채_49x67cm


조선화의 묘사 대상은 세 가지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 화조화다. 인물화는 인간 생활과 투쟁을 주로 묘사한다. 묘사하는 대상의 외형적 형태와 인물의 성격, 특성을 진실되게 표현한다. 풍경화는 인간 생활의 구체적인 정황을 반영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풍경화는 순수한 자연보다는 인간 생활과 밀접한 것을 그린다. 한마디로 국토 예찬이다. 조선화의 또 다른 특징은 탄탄한 묘사력과 농밀한 색감이다. 조선화는 몰골 기법(동양화에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화법)을 표방한다. 윤곽선을 무시하고 면이 화면을 차지한다. 먹을 버리고 색을 택했기에 화사함은 이를 데 없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 부담이 없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소재와 표현 방식도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요인이다. 조선화를 그리는 데는 다른 그림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사 기법이 쓰인다. 명암 기법, 구도 기법, 원근화 기법인데, 이들 기법은 모두 함축과 집중의 원리에 기초한다. 몰골 기법, 선묘 기법과 같은 전통적인 조선화 기법들은 조선화의 형상적인 특징을 규정짓는 기본 징표이다. 조선화를 보면서 깊이 사색하게 되고, 기교적이면서도 우아한 화풍을 느끼게 되는 것은 몰골 기법, 선묘 기법과 같은 독특한 묘사 원리 덕분이다. 우리 민족의 정감과 미감을 잘 살리면서도 간결하고 중심이 두드러진다. 특히 여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존 유화에서는 볼 수 없는 조형적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간결함과 명료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시원함까지 더한다. 조선화의 독특한 기법은 북한 유화에도 그대로 녹아 잇다. 조선화 같은 유화의 섬세함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북한 미술은 지극히 사실주의에 기반하면서도 화가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사유의 시각 질서 속에서 자연과 다시 조우한다. 이 때문에 그림 속의 풍경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의 재현이 아니라 화가의 내밀한 심상의 메타포이다.


박래천_금강산 천화대_캔버스에 오일_110x172cm

자연을 응시하는 다양한 시점에 주목해야
조선화에서 자연 풍경이 사상의 주요 소재로 다뤄지는 이유는 ‘주체미술’이라는 조선 현대미술의 체제적 한계 때문이다. 주체미술의 검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북한 화가들이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회화의 소재는 산천의 아름다운 풍경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점이 되레 북한 화가들로 하여금 금수강산의 수려한 자연 풍경화 작품을 그리게 하고, 세계가 놀라울 만큼의 회화적 필력을 탄생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 미술의 이러한 시점이다. 백두산 천지의 위용이나 금강산 만물상의 웅자가 아닌,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작은 존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내밀한 생명의 메시지를 읽어야 할 것이다. 북한 미술이 치열하게 사생하는 자연의 풍경 또한 시각 언어로 치환된 생명의 메시지와 다를 바 없다. 그 치열한 삶의 메시지를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이것이 가지는 의미에 더욱 주목해보자. 

『통일시대』 기고 글(2018년 12월호 Vol. 146 p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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