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화: 1990년대 이후 북한 조선화 – 김상직, 선우영, 정창모, 황영준

[전시 개요]

- 전시명 
오늘의 조선화: 1990년대 이후 북한 조선화- 김상직 · 선우영 · 정창모 · 황영준
- 오프라인 전시
장소: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2관
일정: 2020년 10월 1일(목,추석) ~ 10월 5일(월) (10월 3일(개천절)휴관)
- 온라인 전시
일정: 2020년 10월 12일 ~
- 주최
다물통일문화재단, (사)K-문화독립군
- 주관
다물통일문화재단
- 협찬
 AHA Group, 아쿠아그린텍(주), GEOMC, AAP




오늘의 조선화: 1990년대 이후 북한 조선화
김상직. 선우영. 정창모. 황영준.

[Introduction]

북한에서 ‘조선화’는 동아시아에서 재료와 기법에 공통성을 가진 전통 회화 – 동양화 – 의 일반적 특성을 지니면서 고유한 민족 회화의 형식을 갖추고, 발전해 온 회화로 정의된다. 일본에서 ‘일본화’, 중국에서 ‘중국화’, 우리나라에서 ‘한국화’로 동양화를 각 국가명을 붙여 칭하듯, 북한이 독특하게 발전시킨 동양화의 북한식 명칭이 ‘조선화’이다. 
《오늘의 조선화: 1990년대 이후 북한 조선화_김상직, 선우영, 정창모, 황영준》은 송화미술관 컬렉션 중에서 북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 온 4인 조선화가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통해 현대 조선화를 돌아보는 전시이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4인 조선화가의 작품들은 사실주의 미술이 발달한 북한의 대가들이 직접적인 관찰과 사실주의적 묘사 그리고 세심한 필력으로 그려낸 북녘의 산천과 전통 화재(畫材)를 담고 있기에, 가 볼 수 없던 북한의 명승지 풍경을 마주하게 하고, 한민족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오늘의 조선화》는 4인 작가의 개별 섹션 – 황영준, 김상직, 정창모, 선우영 – 과 북한 현대사와 미술사 연대표 및 관련 자료로 구성된 아카이브 섹션까지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카이브 섹션을 통해 북한 현대사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4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개별 작가 섹션을 통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룩한 4인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각각 집중도 있게 접하면서도, 서로 비교하여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 하였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현대미술로서 ‘오늘의’ 조선화 명작들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분단 이전 근대미술의 발자취로부터 북한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토양에서 피어난 조선화를 통해 북한의 미술문화를 경험하는 자리이다. 조선화가들은 체제 선전이라는 북한 미술의 역할에 복무하면서 조선화의 매체와 형식적 측면에서 독자적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고, 전달력 있는 보다 쉽고 화려한 색감의 조선화 양식들을 제시했다. 이 전시는 현대 조선화를 통해 북한의 미술문화와 만나는 장을 열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선입견을 재고하고, 북한 미술, 나아가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과 이해의 계기를 마련하여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고자 한다.  

Section 1 – 선묘법의 대가: 화봉(華峯) 황영준(黃榮俊 Hwang Young-Joon)(1919-2002)
충청남도 태생의 황영준은 서울에 상경하여 이당 김은호의 화숙에서 5년간 공부하고 1940년부터 후소회 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 시기 월북하였고, 전후 1960년까지 평양미술대학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주제화’ 작품을 창작하였다. 또한 1950년대 중엽과 1960년대 초 북한이 혁명전적지로 신성시하는 백두산 지구를 수차례 답사하며 천여 점에 이르는 습작을 하였고, 여러 전람회에서 백여 점에 이르는 혁명전적지 풍경들을 발표하였다. 1966년부터는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주요 주제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30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 50대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조선의 회화 전통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독자적 화풍을 수립했다. 황영준은 풍경화 창작을 주로 하였는데, 백두산과 금강산, 묘향산 등을 다룬 그의 풍경화는 선묘를 중심으로 형상을 완결하는 그의 독자적 화풍을 잘 보여준다. 그의 화법은 전통적 선묘 기법을 토대로 주요 묘사 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 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 짓는 특징을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는 완숙한 기량의 선묘법으로 그려낸 북녘의 사계를 담은 1980-90년대의 풍경화 9점이 소개된다. 그의 화법적 특성이 담긴 작품들에서 한반도의 4계절은 계절감을 담은 색채로 전달된다. 그의 풍경들은 금강산, 묘향산을 비롯한 북녘의 명승지로 우리를 인도하며, 폭포를 묘사한 작품과 같은 과감한 구도와 화폭 속 풍경에 나 있는 길로 인도하는 듯한 화면 구성이 인상적이다.  

Section 2 - 현대 조선화의 거장 : 근암(瑾岩) 김상직(金尙直 Kim Sang-Jik)(1934-2010)
함경북도 태생의 김상직은 노동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배웠고, 20대에는 유화가로서 활동했다. 1961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 수업을 받고, 1965년 졸업 작품으로 벽화 <광부들>을 창작하였는데, 돌가루로 인물 형상을 창조하여 영구성이 중요한 벽화의 특성에 적합한 새로운 재료의 발견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으로, 이 후 조선미술가동맹과 평양미술대학,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작품 활동과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김상직은 조선화가 일관 리석호로부터 개별 지도를 받았으며,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에 당선된 대표작 <산전막에 남긴 사랑>을 비롯하여 <감회 깊은 백두산 기슭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봄비>, <목란꽃>, <황목련> 등 다수의 조선화 작품을 발표하였다. 벽화 창작으로 시작된 김상직의 창작활동은 조선화 창작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1996년 결성된 북한 원로화가들의 모임인 송화미술원의 원장으로도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먹의 특성과 붓의 자국을 그대로 살리면서 대상을 간결하고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속도감과 중량감이 느껴지는 선에는 ‘의도’보다 붓이 주는 ‘우연’이 살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화법의 특성을 기반으로 간결하고 선명한 표현을 추구한 김상직의 다양한 화재의 작품이 전시된다. 붓의 자국을 그대로 살려 묘사한 그의 화폭 속 자연은 백두산, 금강산과 같은 북녘의 풍경부터, 웅대한 풍경을 내려다보며 위용을 자랑하는 수리개와 소나무, 소박한 새와 꽃의 모습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이들 작품에는 전통 화재와 기법에 대한 그의 현대적 해석과 조선화가로서의 재능이 담겨 있다.  

Section 3 - 몰골법의 대가: 효원(曉園) 정창모(鄭昌模 Jung Chang-Mo)(1931-2010)
전라북도 전주 태생의 정창모는 한국전쟁 시기 월북했다. 한국전쟁 시기, 부대 내 다양한 창작 활동에 참여 하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되었다. 제대 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회가 운영하는 야간미술연구소에서 소묘를 배웠는데, 당시 임군홍이 그를 지도하였다. 이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에서 수학하면서 정종여, 리률선의 지도를 받았고, 졸업 후 평양교원대학 교원으로,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되며 창작생활을 시작했다. 국가미술전람회 출품작 <북만의 봄>(1966)은 서정성 때문에 그의 대표작으로 공인된 조선화 작품으로, 그는 북한의 주체문예 이론에서 풍경화에 대한 김정일의 테제 ‘자연은 어느 것이나 뜻이 깊고 정서가 차고 넘치게 그려야 한다’를 잘 구현한 작가로 평가된다. 정창모는 1965년부터 조선 시대 회화, 특히 오원의 몰골 그림과 형상방법, 그리고 몰골 창작에서의 붓 다루는 기술, 색채 형상 방법 등에 대해 일관 리석호의 체계적 지도를 받았다. 이러한 스승의 지도와 꾸준한 운필 연습은 1975년에 이르러 그를 조선화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에 서게 하며, 이 시기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이 된다. 그는 지속적인 작품 활동으로 다양한 주제화 작품 뿐 아니라 수 천점의 풍경화, 화조화를 그렸다. 그는 몰골법으로 자연을 그리면서 사의(寫意)에 의거하기보다 형사(形似)를 중시하였으며, 단필법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단계를 설정하고 점차적으로 자연을 그려내 부드러운 필치와 깊이 있는 색조로 대상의 형태미와 색채미를 살려냈다. 또한, 역필과 측필을 혼용하여 바위와 산을 그려나간 그의 준법은 계절과 모양이 다른 산과 바위들의 모양새를 다양하게 표현했다. 부드럽게 스치듯 붓을 밀거나 끌며 거꾸로 움직여 변화무쌍한 자태를 드러내는 선묘, 결구를 찍으며 붓 자국을 낸 힘찬 터치는 그의 몰골 그림에서 힘과 기백, 약동성을 더해준다. 1980년대 중엽부터 정창모는 화조화와 진달래, 목란꽃, 들국화, 포도, 작약, 유자 등과 자기 등을 배합하여 창작한 정물형식 몰골화로 주제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 화재인 매화, 대나무, 국화를 담은 작품 및 화조화와 정물화 그리고 서정성 짙은 풍경화들이 소개된다. 몰골법의 대가인 그의 화폭들은 전통 화재와 기법을 북한의 조선화가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켰는지를 보여준다.  

Section 4 - 세화기법의 대가: 산률(山律) 선우영(鲜于英 Sun Woo-Young)(1946-2009)
평양시 태생의 선우영은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를 졸업하였다. 원래 회화를 전공하려 하였으나 경공업대학에서 미술대학에 편입하여 산업미술을 수업 받게 되었다. 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리다 1972년 이후부터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조직된 조선화 강습에서 조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강의는 정종여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러한 과정 후 1973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가 조선화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1년 작 <범>, 1990년 작 <금강산 석가봉>을 비롯한 동물화, 풍경화 등을 통해서였다. 북한에서 세화 형상은 조선화 형식의 화법적 특성과 우월성을 보여주는 징표의 하나로 여겨져, 경쟁적으로 세화 작품이 제작되면서, 다른 미술 형식이 미치지 못하는 섬세한 형상이 조선화 분야에서 다수 창작되었다. 그러나 선우영 작품 수준의 세화를 창조한 사례는 거의 없어 조선화 세화 발전에 있어 그의 남다른 공로가 인정받고 있다. 사물을 치밀하게 그리는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기초한 그의 진채세화 그림들은 대상의 본질적 측면을 깊이 파고들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것들은 생략하여, 치밀하게 그리는 부분과 대범하게 생략하는 부분이 공존하는 구성을 추구한다. 그의 이러한 작가적 개성은 섬세한 기술을 요구했던 보석공예형상을 학습한 시절의 습벽이 유화, 조선화를 창작하는 전 기간 동안 작용했던 것으로, 이러한 습벽이 작가적 개성으로 굳어지기 까지는 15년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번 전시에는 세밀화법과 대범한 화면 구성으로 담아낸 그의 금강산 풍경화들이 전시된다. 한민족의 마음속에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각인되어 예로부터 화가들에 의해 재현되어 온 금강산의 풍광을 현대 조선화는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눈과 수염, 털의 형상이 정확하고, 치밀하게 묘사 되어 있는 그의 대작 <백두산 호랑이>가 전시되는데, 조선화가 가진 세밀한 표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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