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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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모(인민예술가 · 조선화가)
조선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미술의 한 형식이다. 조선화는 고조선으로부터 세 나라 시기와 발해, 고려, 이조시기에 이르는 오랜 사회역사 발전과정에 동양화의 일반적 특징과 함께 민족회화로서의 고유한 화법체계를 뚜렷이 갖추고 발전하여 왔다. 조선화 화법에는 동양화의 일반적인 공통성과 함께 민족적 특수성이 종합적인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화는 조형적 수단과 형식, 재료와 기법 상 측면에서 동양화 일반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또 그렇다고 하여 동양화의 일반적 특성이 조선화와 꼭 같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화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발생, 발전하여 온 고유한 민족미술 형식으로서 동양화 일반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민족의 독특한 생리가 체현되어 있다.
조선화의 전통이 오래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화법 체계를 뚜렷이 갖추고 있다는 것은 고구려 무덤벽화에 조선화 화법이 잘 살아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4세기 중엽 안악 제2호, 3호 무덤에 그려진 벽화들과 7세기 중엽에 강서 세 무덤에 그려진 《사신도》를 비롯한 고구려 무덤벽화들은 기발한 내용적 구상과 다양하고 풍부한 조형적 언어, 능란하고 훌륭한 표현 수법과 독창적인 형상 체계로 하여 이미 오래 전에 우리 나라에서 민족회화가 대단히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화는 오늘까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봉건적인 구속과 일제 식민지 통치로 하여 많은 곡절을 겪었으나 우리 민족의 유구한 민족회화사가 전하는 그 귀중한 유산들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생활 감정과 정서가 역력히 반영되어 있다.
지난 시기 조선화를 보면 중국화나 일본화와 달리 선명하고 간결하고 섬세한 화법으로 그려져 있다. 오늘 이 화법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실과 시대적 요구에 맞게 더욱 심화, 발전됨으로써 조선화의 화원을 더 활짝 꽃 피우는데 적극 이바지하고 있다.
오늘 조선화는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보여주는 훌륭한 회화 형식으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조선화의 특징을 형상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선명하고 간결하고 섬세한 화법이다. 선명하고 간결하고 섬세한 화법은 함축하고 집중하는 조형원리를 전제로 한다. 조선화에서 선묘법, 색묘법, 명암법, 구도법, 원근화법은 모두 함축과 집중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조선화는 또한 다른 회화 형식들에는 없는 독특한 기법들을 동반하고 있다.
몰골기법, 선묘기법과 같은 전통적인 조선화 기법들은 조선화의 형상적 특징을 규정짓는 기본 징표가 된다. 조선화를 보고 깊이 사색하게 되고 기교적이면서도 우아한 화풍을 느끼게 되는 것은 몰골법, 선묘법과 같은 독특한 묘사원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축과 집중의 원리는 형태와 색채, 명암을 우리 민족의 미감에 맞게 생략하면서 화면의 구도를 간결하게 하고 묘사 대상의 질적 상태를 진실하게 나타내며 작품의 중심이 두드러지도록 하는 데서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
또한 함축하고 집중하는 조선화의 묘사 원리는 묘사 대상의 본질적 대상을 명료하게 돋구어 내어 하나의 형상을 통하여 열, 백을 헤아리게 하며 여백과 같은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조형적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간결하고 명료하여 시원한 느낌을 안겨 준다.
조선화가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적 특성이 뚜렷한 회화 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의 혈통을 가진 지혜롭고 슬기로운 단일민족으로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살아오면서 자기의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킨 데 있다.
고구려의 미술 유산은 이미 우리 나라의 미술이 오래 전부터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었으며 그 시기에 벌써 조선화의 화법적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강서 무덤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는 종교적 관념에 구속된 제한성은 있지만 그 조형적 안목과 형상 방법, 재료, 기법적 측면에 있어서 이보다 몇 백 년 뒤늦게 발전한 유럽에서의 문예부흥기 미술과 동방의 문명을 자랑하던 문인화의 화법 체계와 같은 형상 체계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잘 말해 준다.
또한 세 나라 시기 우리 나라의 미술발전을 빛나게 장식하는 데 크게 기여한 담징과 솔거에 대한 역사 기록 자료들이 잘 말해준다.
자주성이 강하고 창조성이 높은 우리 민족은 봉건 통치배들의 억압과 외래 침략자들의 침입으로 나라의 민족문화 발전에 커다란 난관이 조성되었으나 굴하지 않고 우리의 민족 문화 전통을 끝까지 옹호 고수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다.
조선화가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적 특성이 뚜렷한 회화 형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우리 나라가 세계 예술 발전의 발원지의 하나로서 민족미술 발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조선화는 발생, 발전의 전 노정에서 다른 나라의 좋은 경험을 받아들이면서도 민족적 독립성을 잃지 않고 줄기찬 개화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조선화는 남북이 북종화와 남종화라는 서로 다른 화풍으로 갈라져 주견이 강하고 격식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중국화나 민족적 바탕이 약하고 창조성이 부족하며 민족적 전통이 일관하지 못하여 나중에는 경박하고 속된 그림으로 되어 버린 일본화에 비하여 구색이 든든하고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민족의 넋이 뚜렷하다.
그러나 지난 시기 조선화는 우리의 미술을 허무주의적으로 대하는 봉건사대부들과 수묵화만 숭상하면서 채색화를 천시하는 문인화가들에 의하여 자주성을 위한 우리 백성들의 자랑찬 생활 모습과 투쟁을 외면하고 화조화나 자연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던 조선화의 이러한 제한성은 조선화를 업수이 여기고 서양화만 내세우려는 민족 허무주의적인 경향과 지난날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복고주의 경향을 철저히 극복하고 조선화를 현 시대의 요구와 우리 민족의 감정과 정서에 맞게 민족적 형식인 미술로 발전시켜 극복했다.
조선화에 이용되는 재료 문제에서는 또한 붓의 형상적 기능과 역할로부터 출발하여 그의 재질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화에서 붓은 형상도구에만 국한시킬 수 없다. 그것은 붓의 형태와 재질에 따라 조선화의 형상적 질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조선화에서는 형상체계상 서양화와는 달리 선의 의의가 매우 크다. 서양화에서는 선은 보조적 및 부차적인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조선화에서는 선이 묘사 대상의 질감, 양감, 원근감을 표현하며 생동감, 박력감을 나타내는 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화면 전반에서 보여 주려고 하는 기백, 필치를 돋구는 중요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로부터 출발하여 조선화에서는 붓이 선을 긋기에 편리하게 뾰족하게 만들어져야 하며 털의 재질이 형상에 복종할 수 있도록 유연하여야 한다. 그것은 붓끝이 뾰족하여야 선을 굿고 누르고 올리는 손 작용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화 붓은 수성 안료나 먹으로 그리는 조건에서 수성안료의 흐름새를 조절하기 편리하도록 붓끝이 뾰족하면서도 점차 올라가면서 둥글게 모아지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질 때 안료를 진하고 연하며 갈필의 조화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조선화에서 이용하는 붓이 뾰족한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여 모든 붓이 다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면의 크기와 묘사 대상에 따라 평평한 평붓을 사용한다. 하늘이나 물과 같은 것을 표현할 때에는 넓적한 붓을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경우에만 이용한다.
조선화에 이용하는 재료로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안료를 화면 바탕에 접착시키는 데 이용되는 아교와 선지의 물기 피움도를 약화시켜주는 데 이용되는 백반도 중요하게 쓰인다.
조선화는 기법적 측면에 있어서도 자기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형예술, 공간예술로서 미술의 특성과 사회적 기능은 인류사회의 역사와 더불어 사람의 창조적 활동에 의하여 끊임없이 개척되고 발전 풍화되어 왔다.
조선화에는 인물화, 풍경화, 화조화, 정물화 등이 있으며 그림을 게시하는 형식에 있어서는 액틀에 넣어 걸게 되어 있는 것과 족자형, 병풍형 등 다양한 형식들이 있다.
이러한 그림들을 그리는 형식으로서는 색을 진하게 불투명하고 걸쭉하게 그리는 진채화 형식과 사물의 기본 형태는 먹으로 그리고 여기에 색을 엷게 올려 그리는 담채화 형식, 색감을 투명하게 하면서 먹색을 차요시하거나 먹색이 전면에 우러나지 않도록 색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채색화 형식 등이 있다. 그리고 색을 칠하지 않고 선으로만 그리는 백묘화와 검거나 풀빛 바탕에 금가루를 갖풀에 개어 만든 안료로 그리는 금니화, 순 먹으로만 그리는 묵화 등이 있다.
조선화는 종류적 특성에 따르는 형상기법에 따라서 크게 선묘법과 몰골법, 우림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묘법은 묘사 대상의 윤곽을 선으로 그리고 그 가운데 색을 칠하는 기법이다. 묘사 대상의 형태적 및 구조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많이 쓴다. 선묘법은 전통적으로 채색화 분야에서 많이 쓰이었다. 선묘법으로 그려진 그림 가운데서 색을 연하게 입힌 것은 구륵담채화라고 부르고 색을 진하게 입힌 것은 구륵진채화라고 한다.
선묘법은 한 화면에서 몰골법, 우림법 등 다른 기법들과 함께 쓰이기도 하는데, 조선화로 그려진 중세 말엽의 그림 《무릉도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그림에서는 바위와 복숭아나무, 파도와 학, 불로초 등은 선묘법으로 그리고 대나무는 몰골진채로 그렸다.
몰골법은 테두리선을 긋지 않고 단붓질법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묘사 대상의 형태를 선으로 긋고 색칠하는 선묘법과는 달리 몰골법은 한 두 번의 붓질로 묘사 대상의 형태적 특징과 색감, 질감, 입체감, 운동감을 동시에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므로 몰골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묘사 대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충분히 특징을 파악한 다음 종이나 천의 성질을 고려하면서 단붓질로 색의 짙음새와 선의 강약 등 다양한 효과를 활달하고 대담한 필치로 나타낼 수 있는 일정한 숙련을 하지 않고서는 그 맛을 살리기가 어렵다.
몰골법은 묘사 대상의 개별적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보다 대상의 전체적인 특징을 생동하고 집약적으로 힘 있게 표현하는 데 많이 쓰이며, 주로 선묘법으로 그려지는 그림들이라고 해도 멀리에 있는 대상이거나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대상들을 처리하는 데 이용된다.
몰골법으로 그린 그림들은 서양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미감을 준다. 몰골기법으로 그려진 우수한 그림들은 간결하고 집약적이며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조형적 미감을 준다.
우림법은 백반 칠을 한 종이나 천에 그림을 그릴 때 색채를 고르게 펴주면서 농담을 주어 사물의 입체감과 질감 등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우림법으로 채색할 때에는 대체로 색을 묻힌 붓과 묻히지 않은 물붓을 동시에 엇바꿔 사용하면서 바탕에 물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채색을 하여 피우거나 혹은 채색을 먼저 하고 물붓으로 피우는 방법으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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